견진성사
첫영성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견진성사55를 준비하는 피정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기 위해 정성껏 준비했는데, 이 ‘사랑’의 성사를 받는 데 사람들이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단 하루 동안만 피정을 하지만 주교님이 정한 날에 못 오셨기 때문에 저는 이틀 동안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려고 ‘까셍’ 산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성체 축일을 위해 소담스러운 들국화를 한아름 꺾었습니다. 아, 제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저는 사도들처럼 성령이 제게 오시는 것을 기쁘게 기다렸습니다. 머지않아 완전한 신자가 된다는 생각, 특히 주교님이 성사의 표시로 이마에 새겨 주실, 신비로운 십자가를 영원히 간직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며 좋아했습니다. 마침내 그 행복한 시간이 왔습니다. 저는 성령 강림降臨 때 불던 세찬 바람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엘리야 예언자가 들은 적이 있는 ‘호렙’ 산 위에서 솔솔 부는 그 부드러운 바람(1열왕 19,12–13 참조)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는 괴로움을 견뎌 내는 힘을 받았습니다. 제 영혼의 순교가 장차 시작되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레오니 언니가 저의 대모였는데, 언니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식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언니도 저와 함께 성체를 모셨지요. 그 즐거운 날 예수님과 결합하는 행복을 또 받았습니다.
기쁘고 잊을 수 없는 견진성사의 날이 지나자 제 생활은 다시 평상시로 돌아가 괴로운 기숙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첫영성체를 위한 피정을 할 때는 모두가 착한 마음씨를 가졌고, 저처럼 진정으로 덕을 닦으려고 결심했기에 그 친구들과 지내는 생활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기숙 학교에서는 그 친구들과 전혀 다르고, 정신이 산만하고 규칙을 지키려 하지 않는 학생들과 지내야 했기 때문에 대단히 불행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명랑한 성격이었지만 제 또래 아이들의 장난에는 잘 섞여들 줄 몰랐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나무에 기댄 채 진중한 생각에 잠겨서 그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무척 마음에 드는 장난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나무 밑에 죽어 있는 새들을 묻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저를 도와서 작은 새들의 몸집에 알맞은 나무와 꽃을 심어서 아주 예쁜 묘지를 만들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생각나는 것을 그냥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가끔 큰 학생들도 끼어서 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며칠 동안 계속하기도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받는 인상과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점점 재미있게 꾸며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수녀님이 우리가 ‘입을 놀리는’ 것보다는 ‘다리를 놀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셔서, 제 연설장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