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외에서
바이외에 도착했을 때 세찬 비가 쏟아졌습니다. 아빠는 당신의 어린 여왕이 주교관으로 가는 길에 고운 옷을 함빡 적시게 될까 봐 대성당까지 마차를 불러 태워 주셨습니다. 성당에 도착하자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에서 큰 장례미사가 거행되고 있었고 주교님 및 모든 성직자들이 참석하고 계셨습니다. 상복을 입은 부인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흰 모자에 밝은 색의 드레스를 입은 저를 모두가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성당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더 창피하게 만드시려고, 딸 바보 아빠가 단순한 마음으로 저를 맨 앞자리에 앉히려 하시는 것을 말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빠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서, 시키시는 대로 사뿐히 나아가면서 누군지도 모를, 모르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가까스로 큰 제대 뒤에 있는 작은 예배실로 가서야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었고, 저는 비가 그쳐 빨리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당을 나오면서 아빠는 아무도 없어서 더 커 보이는 대성당의 위용을 감상해 보라고 하셨지만, 제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라 아무것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부주교인 레베로니 총대리님이 방문 일자를 정하신 분이어서, 우리의 도착을 알고 계실 그분에게 곧장 갔지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주변 거리를 서성거렸는데 길들이 마냥 쓸쓸해 보였습니다. 아빠가 주교관 근처에 있는 커다란 호텔로 저를 데리고 가셔서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사 주셨지만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저를 얼마나 다정하게 대해 주셨는지 모릅니다! 주교님께서 틀림없이 제 청을 들어 주실 것이라고, 기운을 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좀 쉬었다가 우리는 다시 레베로니 신부님 방으로 갔습니다. 우리와 같은 시간에 또 한 사람이 왔는데, 신부님은 그 사람에게 기다리라고 정중히 말씀하시고 우리를 먼저 방으로 들이셨습니다. 우리의 방문이 길어서 그 신사는 지루했을 것입니다. 총대리 신부님은 매우 친절하셨지만 우리가 온 이유를 들으시고 무척 놀라신 것 같았습니다. 미소를 띠고 저를 바라보시며 몇 가지 물으신 다음에 “주교님께 소개해 드릴 테니 따라오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저를 보시고 “아, 눈에 다이아몬드가 맺혔군요. 그건 주교님께 보여 드리면 안 될걸!” 하고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는 주교님들의 초상화들이 걸린 넓은 방을 여러 개 지났는데, 큰 방에서 저는 한낱 조그만 개미 새끼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감히 주교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주교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주교님은 신부님 두 분과 함께 발코니를 거닐고 계셨는데, 레베로니 신부님이 몇 마디 말씀을 건네신 후 두 분은 함께 저희에게로 오셨습니다. 방에는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가 있고, 그 앞에 커다란 안락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주교님이 들어오시자 제 옆에 계시던 아빠는 무릎을 꿇고 강복을 받으셨습니다. 주교님은 아빠에게 안락의자에 앉으라고 하시고 그분도 마주 앉으셨습니다. 레베로니 신부님은 저에게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공손히 사양했더니 “어디 순명할 줄 아나 보자.”라고 하시며 강하게 권하셨으므로 결국 앉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또래 아이들 네 명 정도는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굉장히 큰 안락의자에 푹 파묻혀 있는데, 신부님이 보통 의자에 앉으시는 걸 보고 얼굴이 확 붉어졌습니다. 저는 아빠가 주교님께 말씀드려 주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에게 우리가 찾아온 뜻을 주교님께 직접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갖 미사여구를 다해 말씀을 드렸지만, 주교님은 이런 말재주에는 익숙하신 듯 제 설명에 별다른 감동을 받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천만 가지 이유보다도 가르멜 수도회 총장 신부님의 말 한마디가 더 힘이 있겠지만, 그런 것도 없고 기댈 데가 없었습니다.
주교님은 제가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어 한 지가 오래됐는지 물으셨습니다. “네, 주교님, 정말 오래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15년만큼 됐다고는 할 수 없을 테지.” 레베로니 신부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보다 짧아 봤자 몇 해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정신머리가 들면서부터 수녀가 되기를 바랐고, 가르멜 수도회를 알게 되자마자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으니까요. 가르멜에서 제 영혼의 모든 갈망이 채워지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고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꼭 이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보다 더 어설프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전해 드리고자 하는 뜻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주교님은 아빠가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하셔서, 제게 아빠 곁에 몇 년 더 있으라고 하시려다가, 아빠가 제가 열다섯 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대신 청하시며 제 편을 드시는 걸 보시고 매우 놀라며 감동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주교님께서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필히 가르멜의 총장 신부님을 만나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총장 신부님이 반대하실 것임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제 마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레베로니 신부님의 조언을 잊어버리고 주교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